네이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데드라인과 결과물이었다. 언제까지 무엇을 한다. 거기엔 ‘왜?’라는 질문이 들어갈 여지가 적었다. 업무를 지시한 사람도 그 이유를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 답을 찾으려면 매니저의 매니저의 매니저에게…
그럼 네가 직접 가서 물어보든지.
누군가 내게 농담으로라도 하지 않는 말이었다. 그렇게 말하면 정말로 직접 가서 물어볼 것 같았으니까.
6년을 다니는 동안 첫 1년을 제외하곤 ‘회사의 방향이나,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는 갈증이 있었다. 거대한 기계의 부품같았다. 보상도 좋고, 사람들도 좋고, 복지도 좋았지만 그것으로는 채워지지 않았다.
마지막 해에 결국 직접 찾아가 물어봤다. 그리고 그 일이 발단이 되어 6개월 뒤에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네이버가 하려던 것을 이해하게 된 것은 네이버를 나온 후였다. 네이버는 한 번 방향을 정하면 계속 한다. 성급히 방향을 잡지도 않고, 안된다고 하더라도 쉽게 포기하지도 않는다. 검색으로부터 시작하여 광고, 커머스, 결제, 멤버십으로 이어지는 네이버의 전략과 실행은 네이버를 나와 한 걸음 떨어져서, 그리고 시간을 두고 계속해서 바라보았을 때 훨씬 더 잘 이해가 되었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말해주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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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 들어가서 매주 금요일 Mark’s Q&A를 통해 회사의 방향을 명확히 알 수 있고, 궁금한 것은 언제든지 물어볼 수 있다는 것에 해방감을 느꼈던 것은 이러한 배경 때문이었다. 그러나 페이스북이라고 누구에게나 좋은 회사였던 것은 아니었다.
페이스북은 그 일을 직접 수행하는 실무진(Bottom)의 의견이 굉장히 중요한 회사다. 회사의 경영진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의 ‘북극성 지표’와 왜 거기로 가야 하는지를 열심히 공유해 주지만, 거기에 어떻게 가야 하는지는 각자가 알아내야 한다. 아무도 무엇을 언제까지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일은 스스로 찾아서 해야 한다.
이것이 굉장히 좋게, 멋있게 들릴 지도 모른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Impact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회사다. 최대한의 자유를 주지만 계속해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압박감은 상상 이상이다. 한국에는 근로기준법이 있고 쉽게 직원을 해고할 수 없다고? 물론 페이스북은 법을 최대한으로 준수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모두가 굉장한 압박감을 가지고 일하는 회사에서 혼자만 여유있게 노를 저으며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다는 것은 반대로 하면 각자의 판단을 중시한다는 이야기다. 언뜻 좋아보이지만 일을 할 때는 그 ‘각자의 생각’을 설득해야 한다. 모두가 협력적이기는 하지만 리소스는 한정되어 있다.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기 위해서는 설득해야 한다. 그 과정은 그렇게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다. 자기가 주도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없을 경우에는 더욱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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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에 가서 처음에 가장 힘들었던 것 중의 하나는 도대체 ‘누구를 설득해야 하는지’ 알기가 어려웠다는 점이다. Top이 결정했다 하더라도 실무에서는 ‘그런데요?’란 말이 나왔고, 그렇다고 Bottom에 권한이 실려있지도 않았다. ‘반대하는 모든 사람’을 설득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회사인데’ 하는 생각이 절로 났다.
그러나 카카오를 다니면서 점점 생각이 바뀌어 갔다. 사람들을 만나 설득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내가 좋아했던 두 명의 매니저가 사람들을 설득하는 과정을 바라보며 이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카카오의 모든 조직들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 같았다. 각자가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모두가 한 곳을 바라보았을 때의 파괴력은 어떤 회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했다.
좋은 사람들, 실력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필요한 것은 지시도, 권한도 아니었다.
굳이 다른 회사의 ‘일하는 방식’을 따라할 필요가 없었다. 카카오가 가지고 있는 강점을 이해하고 살리기만 하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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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를 나와 60명 규모의 스타트업으로 옮겼을 때 마침내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내게 주어졌다. 그러나 이미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어떤 조직에든 통하는 마법같은 공식은 없다는 것, 그리고 각 회사에는 자신에게 맞는 방식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일하고 싶은지 동료들에게 물어보았다.
네이버가, 페이스북이, 카카오가 일하는 방식을 말해주었지만 ‘그 중에서 무엇을 고를래?’가 아니라, 각각의 방식이 가지는 장점과 단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우리는 어떻게 일하고 싶은가?’에 대해서 묻고 답하는 과정을 가졌다. 처음 한 번만 한 것이 아니라 회사를 들어가 나올 때까지 1년반의 시간 동안 계속해서 그런 시간을 가졌다.
일을 하는데 있어 내가 선호하는 방식(굉장한 압박감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에 집중하여 성과를 내는 것)이 있지만 그것은 ‘나의 방식’이다. 누군가에게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강요’할 수도 있다. 그렇게 했을 때 성공할 확률이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일 뿐.
회사는 민주주의가 아니고 각자의 의견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필요한 순간 리더는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눈치를 보며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그러나 그럴 때는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일하고 싶은가?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마음을 물어보는 것을 좋아한다. 결정하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네이버와 페이스북이 회사의 방향성이 명확하다는 공통점이 존재한다면, 현재 제가 다니는 회사는 회사의 방향성이 없다는 큰 차이가 존재합니다.
회사라는 하나의 집단, 단체에 속해있음에도 '과제업무'라는 방식을 바탕으로 각자가 생각하는 목표를 설정하고 해당 목표를 해결하기 위해 가설을 세우고 가설을 검증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성공적으로 가설을 검증하면 보상금도 주어지고, 이렇게 검증한 가설 하나하나가 모여 회사의 성과가 됩니다. 하나 하나의 개인이 스스로 경영자가 되어 '일의 방식'을 배우고 스스로를 경영해야 합니다.
이러한 '일하는 방식'이 정말 맞을까, 보다 나은 방식이 있지는 않을까 고민했는데 "어떤 조직에든 통하는 마법같은 공식은 없고, 각 회사에는 자신에게 맞는 방식이 있다는 말씀이 도움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