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은 운일까, 운이 아닐까.
맡은 프로젝트마다 계속해서, 혹은 높은 확률로 성공을 이어가는 사람이 있다. 반면, 어떤 프로젝트를 맡겨도 계속해서 실패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가장 많은 것은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는 경우다. 그렇다면 누구나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성공이나 실패는 그 사람의 역량과 노력에 기반하는가, 아니면 운이 훨씬 더 큰 영향을 끼치는가. 성공에 있어 운은 어느 정도 작용하는 것일까.
성공을 반복하는 사람은 운 보다는 그 성공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는 경우가 많다. 반면, 계속 실패하는 사람은 자신감을 잃고 움츠려 드는 타입과 실패의 원인을 운이 없기 때문이라 생각하는 타입으로 갈린다. 그렇다면 성공과 실패를 왔다갔다 하는 사람은? 성공했을 때와 실패했을 때의 차이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경우도 있고, 그냥 모든 것은 운에 따른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사람마다 ‘운’을 대하는 관점은 천차만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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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말로 프로젝트 성공에 있어 운은 어느 정도 작용을 할까?
직장생활의 대부분 동안 나는 ‘운’에 대해서는 굉장히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프로젝트의 성공과 실패가 ‘운’에 좌우된다면, 나의 노력이 아니라 운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면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념 중 하나가 ‘내가 그 일을 할 때와 하지 않을 때 어떤 차이가 발생하는가’이다. 만약 운이 정말로 크게 작용하는 일이라면 내가 집중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가 크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예상되는 일들은 멀리 하고, 내가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되는 기회를 찾아 다녔다.
‘운’에 대해서 덜 생각했던 다른 이유들도 있다. 첫째, 일이 잘 진행되지 않았을 때 ‘운’ 탓을 하고 싶지 않았다. 잘못의 이유를 내가 아닌 다른 것으로부터 찾으면 그것을 해결할 가능성은 극단적으로 낮아지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 너무나도 명확한 증거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계속해서 프로젝트를 망치는 사람들의 존재’였다.
회사를 다니며 일을 하다보면 ‘마이너스의 손’이라 부르기에 충분한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성공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승진을 하고 더 큰 프로젝트를 하러 떠나기 때문에 어딘가로 훨훨 날아가는 반면, 계속해서 실패를 하는 사람은 원래 있던 자리에 머물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근로기준법 상 해고가 쉽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런 측면이 있다. 이 사람들은 정말로 ‘계속해서’ 실패한다. 가끔씩, 아주 가끔씩 천운이 닿아서 일이 잘 풀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한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역풍이 불면 바로 무너진다. 왜 주위에 한 두명씩은 있지 않은가. 그 사람이 하는 프로젝트에는 본능적으로 참여하고 싶지 않은 그런 사람이.
계속해서 실패하는 사람들의 존재는 세상은 ‘운’으로만은 돌아가지 않는다는 매우 강력한 증거라고 생각했다.
맡은 프로젝트는 어떻게 해서든지 성공시킨다는 것은 내게는 굉장히 중요한 가치였다. 예상치 못한 위기에 닥칠 때도, 잘못된 선택을 했던 것에 대해서 굉장히 후회하고 낙담하는 경우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그 상황을 반전시킬 기회를 찾아나섰다. 한 번이라도 실패하면 ‘운’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성공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만 찾아다녔던 것은 아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아는 프로젝트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 것들은 재미가 없고, 재미가 없는 것에는 몰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번 시작하면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는 계속 하기 때문에 어떤 프로젝트를 할 지를 매우 신중하게 골랐다.
세상 모든 일에는 자신의 노력보다는 ‘운’이 더 크게 작용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최대한 멀리했다. 성공했을 때 모든 것을 운에 돌리는 사람도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러한 겸손은 세상에 잘못된 시그널을 준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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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예전과는 ‘운’에 대해서 조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여전히 ‘계속해서 실패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알고 있기도 하고, 내가 성과를 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정말로 성공은 맞았나 하는 고민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가장 달라진 것은 ‘운’에 대해서 이전보다는 훨씬 덜 고민한다는 것이다.
‘운’이란 것은 그 정의 상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일 뿐이다.
내가 맡은 프로젝트의 성공이 운에 달렸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대신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집중한다. 운 때문이든 아니든 간에 일이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그 이유를 찾고 그 상황에서의 최선이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운이 나쁘면 꽤 멀리 돌아가게 될 수도 있지만 계속해서 방법을 찾으면 결국은 닿을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운’이 좋아서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면 그러한 운을 또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굳이 운이 좋아서 생긴 요행을 내가 한 것으로 포장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있다면 ‘운’이 작동하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많은 회사, 많은 사람들의 경우 천운을 만나도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의 기구한 운명과 같이 오히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운은 회사나 개인에 있어 재앙이 되기도 한다. 반면, 어떤 ‘조건’ 하에서는 운이 이상할 만큼 생각보다 자주 찾아오기도 하고, 그러한 운을 ‘기회’로 살리기도 한다. 이런 차이들이 왜 발생하는 것일까, 그것들이 발생할 확률을 높이려면 무엇을 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모든 것의 잘못을 ‘운’에 돌리면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것에는 여전히 동의한다. 심각한 증상을 발견했다면 그것을 치료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의사를 찾으려 노력하지 어차피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전에 비해서는 ‘운’에 대해서 훨씬 더 관대해졌다. 무엇보다 내가 결정적으로 성공에 기여했다고 생각한 프로젝트에서조차 내가 그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준 다른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떠올리게 된 부분들이 많다. 다른 한 편으로는 지금의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계속해서 일을 하며 경험한 것들에 대해서 글을 쓰는 것도 그렇게 ‘운을 믿지 않고 어떻게든 프로젝트를 이끌어 가려는’ 사람들에게 힘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예측할 수는 없다. 답을 찾다 보면 생각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삶을 같이 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것에는 분명 ‘운’이란 녀석의 도움이 필요하다.

